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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멘토링6] 첫술에 배 불리는 일 없지요.

편집/기자: [ 김영화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8-10-12 16:01:18 ] 클릭: [ ]

— ‘해란송 닭발’ 사장 조영희, 소자본 창업 권장한다

그 어느 곳에 가나 그곳의 대표적인 음식점들이 있다. 소위 우리가 부르는 ‘맛집’이다. 최근년간 새로운 관광코스개발로 전례없는 호황을 맞은 룡정시, 그곳에도 관광객들이 한번쯤 꼭 들린다는 ‘맛집’이 있다. 바로 매운 닭발료리로 이름 난 룡정의 ‘해란송 닭발’음식점이다. 이번 국경절 련휴기간에도 이 가게에는 소문을 듣고 다려온 관광객들로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자그마치 40명이 문밖에 대기하고 기다리는 광경은 사장 조영희(46살) 씨가 마음이 조급해나면서도 흐뭇한 심정을 감추지 못하는 까닭이기도 하다.

장사가 잘 되다보면 더 많은 경제효익을 얻는 건 당연하지만 조영희씨가 더 기쁜 리유는 경제적인 수익보다도 현재 그 어디에 명함을 내밀어도 알아주는 ‘맛집'으로 성장해온 보람찬 일 때문이라고.

기실 ‘룡정 닭발’이 유명해진건 관광객들이 몰려오기 썩 전부터인 이 지역에 사는 고객들사이에서 입소문을 타면서부터다. 매운 닭발료리는 남녀로소가 좋아하는 이 가게만의 ‘특색메뉴’로 되여 연변주내 관광객은 물론 외지의 관광객들도 고속철까지 타고 맛 보러 오게 되였다. 기자는 일전 가게 주인인 조영희씨를 찾아 ‘맛집’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창업을 준비하려는 대학생들에게 귀감이 될 수 있도록.

해란송 닭발가게 주인 조영희씨

과감하게 또는 부지런하게, 아니면 꾸준하게

‘해란송 닭발’운영도 초창기에는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14년전 유치원 교원으로 근무하던 조영희씨가 ‘철밥통’을 때려치고 맥주점을 차려보겠다는 말에 주변 사람들은 못마땅한듯 입을 딱 벌렸다. 가장 못미더워 했던 사람이 바로 조영희의 음식솜씨를 손금보듯 잘 알고 있는 그의 남편이였다.

“당시 개발이 잘 되여 있지 않았던 룡정의 륙도하 강옆 한켠에 값 싼 영업집을 얻어 무작정 맥주점을 차리게 되였습니다. 일단 결심이 확고해지면 밀어부치는 성격인지라 ‘맨땅의 헤딩’격으로 달려들었죠.”

32살 가냘픈 녀자의 몸이였지만 머리속에 준비해둔 꿈은 나름대로 많았다. 홀서빙에서부터 주방장, 청결공, 카운터까지 혼자 몸으로 뛸 각오를 단단히 다졌지만 가게는 손님은 커녕 개미 한마리도 얼씬거리지 않는 날이 수두룩했다. 료리실력은 그때 손님이 없었던 틈을 타 짬짬이 연습하면서 차곡차곡 익혀 주방장역할은 완벽하게 소화했다. 그러다 어떤 날은 한상이라도 겨우 채워지면 스스로 위안을 느끼며 기뻐하던 그는 매일 손님 한상씩 더 늘려보려는 작지만 야심찬 목표를 세웠다.

“별 다른 재간이 없어 한 우물만 파다보니 이런 날도 오네요.”

별 다른 재주가 없어서 여태껏 한 우물만 파왔다며 겸손하게 이야기하는 그녀는 창업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경영노하우를 귀띔한다면 바로 ‘끈기’라는 것이다. 쉬운 것 같지만 그 꾸준함을 견지하는 것은 그 어떤 업종을 불문하고도 가장 어려운 ‘미션'이 될 거라며 그는 첫번째 성공요인은 바로 그게 아닐가 싶단다.

“특히 요즘따라 음식류행이 너무 빨리 교체가 되는데 류행도 좋지만 일단 자신이 시작한 분야에서 파고 드는 정신을 갖추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각고의 노력끝에도 정말 이건 아니다 싶을 때, 다시 새로운 시도를 해도 늦지 않은데 요즘은 성미가 급한 창업자들은 새로운 추구에만 너무 집착하는 같아요. 노력도 해보기전에 또 다른 시도를 꿈꾸는건 자신의 먼저 했던 ‘선택'을 스스로 부정하는 것과 다를 바가 뭔가요.”

대표메뉴 ‘매운 닭발’의 탄생

꾸준함 하나로 맛집으로 등극한 일등공신인 매운 닭발메뉴의 탄생은 하루 아침에 뚝딱 이뤄낸게 아니다. 남들보다 특색있는 메뉴를 하나쯤 내와야 될 것 같아 고심한 끝에 내온게 바로 지금의 ‘매운 닭발'이였다.

초반에는 닭발을 간장에 졸여도 보고 기름에 볶아도 보았지만 그렇다할 만한 맛이 안났다. 그러다 조선족들이 가장 즐겨먹는 입맛을 떠올려보니‘매운 맛'이였다. 매울 정도도 알싸한 맵기로부터 단계별로 맵기의 강도를 올려 고객입맛 맞춤형으로 내놨더니 손님 반응이 꽤 좋았다. 한국에서 다년간 주방장으로 일해온 이웃을 수십번이고 찾아가 끈질기게 배움을 청했고 또 조선족만이 아닌 한족들의 입맛에도 맞추려고 갖가지 조미료들을 번갈아 넣고 빼기를 반복하며 공들인 결과, 지금의 매운 닭발의 탄생까지 자그마치 2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그때는 마음이 한시 조급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그 시간들이 하나도 아깝지가 않습니다. 그런 인고의 시간들이 있었기에 오늘날 떳떳한 ‘맛집'으로 부상할 수 있게 되였던 것 같아요,”

가스불앞에서 구슬땀을 훔쳐가며 닭발과 씨름을 벌였던 그 시절, 100여평방메터밖에 안되는 가게에서 혼자 분주히 돌아치다가 지금은 가게를 360평방메터로 확장해 십여개 단칸을 갖추고 20여명 종업원들을 거느리게 되였다.

“잘 먹고 갑니다.” 손님들이 이 한마디를 남기면서 문을 나설 때면 그렇게 기쁘다가도 손님들의 언짢은 기색 하나에도 스스로 맛점수를 매겨보게 된다는 조영희씨, 간혹 시킨 음식을 많이 남기고 간 상을 발견하면 하루종일 뭐가 문제였을가 고민에 빠지는 그녀는 자신의 작은 실수 하나도 허투루 용납하는 법이 없다.

불우한 이웃들도 함께 행복해지고파

가게에 붙어 살다싶이 하고 있는 그녀도 가끔 자리를 비우는 날들이 있다. 누구보다 어려운 아이들을 돕는 공익사업이라면 두팔 걷어부치고 나서는 조영희씨에게 그 시간만큼은 할애해도 좋단다. 그는 현재 네명의 조선족 중학생들에게 매다 500원씩 후원해주고 있다. 가난하게 자랐던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지금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는 그는 가게를 운영해오면서 근 십년간 십여명의 불우한 아이들을 도와나섰다.

아이들이 학업의 길에서만큰은 학잡비 때문에 중도 포기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며, 우리 민족의 미래를 열어갈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다는 조영희씨는 불우한 아이들 사랑에 각별한 사랑을 드러냈다. 지난 연변언어장애훈련쎈터 6.1절 맞이 운동회가 열릴 때도 그는 운동회가 열리는 체육관으로 가장 먼저 달려와 지원자로 나섰던 것도 바로 이 때문이였다.

“당의 따뜻한 정책으로 저같이 아무 ‘재간’없는 사람도 이렇게 가게를 열고 꽃피는 날이 오네요. 형편이 조금씩 나아지다 보니 나도 그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사회 일원으로 되려고 부단히 노력중입니다.”

고향을 알리고 내 고향의 ‘맛집’으로 남을 수 만 있다면

“수많은 사람들이 가맹점 가입문의를 보내왔는데도 저로서는 선뜻 받아 들일수가 없었습니다. 물론 가입점을 늘이면 저야 더 많은 수익을 낼 수 있지만 그러면 더 이상 내가 나서 자란 저의 고향인 룡정에만 있는 ‘맛집’상징으로도 남을 수가 없잖아요. 고향땅에서 시작한 나만의 가게를 꼭 지키고싶었습니다. 나를 위해서도, 고향을 위해서도 그것을 지켜야 하는 것이 나로서는 가장 큰 중임처럼 여겨졌습니다.”

전국 어디라 할 곳 없이 ‘해란송 닭발’을 먹어봤던 사람들이라면 택배로 배송을 부탁해오면서 여러 지역에서 가맹점문의를 제기해 왔지만 그가 완곡하게 거절할 수 밖에 없던 속깊은 리유였다.

“무언가를, 특히 외식업을 운영하려면 반드시 거창하고 화려하지 않아도 됩니다. 외식업의 본질은 어디까지나 맛과 서비스입니다. 그 두개를 놓치고 ‘겉치레'에만 초점을 맞추다보면 본질을 잃게 되지요. 특히 초보창업자들이라면 무리가 없는‘소자본 창업'을 선택하여 스스로의 노력으로 크게 키워나가는게 보람이 아닐가요? 첫술에 배 불리는 일 없지요.”

창업을 준비하는 자들에게 그는 14년동안 자신의 손끝으로 이루어내고 페부로 고객사랑을 느꼈던 진심어린 조언을 들려주며 조영희씨는 광범한 창업자들의 용기있는 도전을 응원해 나섰다.

/글과 사진 길림신문 김영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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