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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의 주인공》후속보도(11)방근섭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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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룡| 작성일 :18-12-17 09:04| 조회 :2,177|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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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페트를 불던 ‘축구신사’ 방근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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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근섭.

 

“어려서는 학교음악써클을 다니면서 트럼페트에 빠졌더랬습니다.” 

 

프로선수시절 모습 그대로 갸름한 얼굴에 항상 부끄러움을 타는 듯한 방근섭(1969. 4. 11—) 감독이 웃으면서 하는 말이다. 

 

화룡시 두도진 광흥중학교 무용교사인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소학교에 입학하자마자 학교 음악선생님에게 끌려 악기조에 들어갔다. 총명한 데다가 열정이 높아 하나를 배우면 둘을 깨칠 정도로 하루하루 기교가 늘었고 음악에 대한 리해가 빨라 선생님으로부터 ‘천재’라는 평가까지 받았던 방근섭이 축구인생을 시작한 것은 소학교 3학년 때부터였다. 

 

그 때까지 학교에 축구팀이 없었던 연고로 축구를 몰랐던 근섭이가 축구에 빠진 것은 그의 짜개바지 친구들이 하나, 둘 축구조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매일 오후 방과후면 운동장에서 유니폼을 입고 떠들썩하니 축구공을 쫓아다니는 친구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근섭이는 음악선생님 몰래 체육선생님을 찾아가 축구조에서 뽈을 차고 싶다고 말했다. 속도가 빠르고 발기술이 훌륭한 근섭이를 잘 아는 체육선생님은 흔쾌히 동의했다. 

 

문제는 음악선생님이였다. 싸울 태세로 체육선생님을 찾아가 한바탕 해내더니 아예 부모님을 학교에 오라고 호출장을 내렸다. 결국 “아들의 선택을 따르겠다.”는 근섭의 어머니 말에 음악선생님도 물러섰다. 이렇게 축구를 시작한 근섭이가 화룡현체육학교(건설소학교)를 거쳐 연변주체육학교 13-16(13세부터 16세 사이의 축구중점양성반)훈련영에 입학한 것은 소학교 5학년이였던 1980년이였다. 그 때까지만 해도 그의 키는 141센치메터로서 학급에서 꼬맹이취급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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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시절의 방근섭(방태호 찍음). 

 

13-16시절에 키가 170센치메터로 훌쩍 자라난 근섭이가 당시 청년팀의 정종섭 감독의 눈에 든 것은 인도네시아에서 진행된 아시아중학생축구경기에서였다. 그번 경기에 참가한 방근섭의 표현은 눈에 띄였다. 대방의 수비수들을 요리조리 빼돌리고 공간을 찾아 쏙쏙 빠지는 방근섭의 작은 몸매와 령활한 발놀림이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주체육학교를 졸업하던 해 당시 정책으로 대학에 갈 것인지 아니면 청년팀에 들어가 계속 뽈을 찰 것인지 하는 선택이 학생들에게 주어졌다. 정종섭 감독과는 청년팀에 들어가겠다고 말했던 방근섭이가 이 때 불쑥 대학을 선택했다. 그렇게 온화하던 정종섭 감독이 이 때문에 크게 노할 줄이야. 

 

“다른 애들은 학교에 남아 대학시험준비를 할 수 있으나 근섭이만은 두도에 돌아가 당지 학교에서 공부하면서 대학시험을 준비해라.” 

 

은사의 불호령에 급기야 잘못을 느낀 근섭이는 부모님께 사실정황을 낱낱이 회보하고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다. 결국 부모님들이 나서서 사정하고 근섭이가 청년팀에 들어가 계속 뽈을 차겠다고 해서야 정감독의 노여움이 풀렸다. 

 

정종섭 감독은 생전에 필자를 만나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근섭이는 보자마자 대번에 마음에 들었어. 뽈군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지. 사실 세계적인 스타들을 보면 다 잘 생겼잖아? 그리고 각자 자기의 개성이 있지. 근섭이가 바로 그런 놈이야. 음악을 하던 놈이여서 그런지 리듬이 있었고 신사스러웠지. 뽈이 그 애의 발밑에 가면 수세가 공세로 바뀔 때가 많았다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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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스타팀 대 연변스타팀 경기에서의 방근섭. 

 

청년팀에서 일년간 청년련맹경기를 뛴 방근섭은 최광일, 김광주 등과 함께 연변팀에 발탁되여 1987년에 펼쳐진 전국운동회 예선경기에 참가한 후 1988년부터 중국축구 갑B련맹경기에 참가하면서 처음으로 프로선수생활을 시작했다. 

 

이렇게 자기의 생일과 똑같은 11번 등번호를 가지고 10년간 연변팀에서 뽈을 차면서 연변의 축구팬들에게 수많은 추억을 남기고 기쁨을 선물했던 방근섭에게 있어서 가장 잊을 수 없는 경기는 1992년 마지막 홈장경기였던 강소팀과의 경기였다. 이 경기만 이기면 나머지 경기결과와는 관계없이 중국 최고리그인 갑A진출을 확정짓는 중요한 경기였기 때문이다. 

 

전반전에 강소팀에 선제꼴을 내주고 0:1로 뒤져가던 중 동료선수의 패스를 이어받은 근섭이가 왼쪽변선에서 치고 나오면서 보기 좋게 대방수비수를 빼돌리고 오른발로 힘차게 슛한 것이 대방의 꼴문을 갈랐다. 동점꼴을 뽑은 연변팀은 사기가 충천하여 밀물공세로 강소팀을 압박했고 결국 방근섭의 패스를 이어받은 동료선수가 추가꼴을 터뜨리면서 2:1로 강소팀을 제압함으로써 1라운드 앞당겨 갑A에 진출하였다. 

 

“갑A진출 최고의 공신은 아니였지만 나의 한꼴 한번 도움이 연변팀의 갑A진출을 확정지었다는 게 얼마나 의미가 큽니까?” 

 

축구인생 40여년에 가장 기억에 남을 만한 경기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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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스타팀 대 연변스타팀 경기에서의 방근섭. 

 

1998년에 졸라, 리시봉 등과 함께 연변의 3총사로 1997년에 갑B로 강급했던 천진태달팀의 갑A진출을 도와준 방근섭은 1999년에 당시 을급팀이였던 청도해리풍에 가서 팀의 갑B진출을 돕다가 2002년 을급리그를 전전하는 현재의 연변팀에 돌아와 뽈을 차다가 그 해에 정식으로 은퇴하였다. 

 

은퇴후 방근섭의 축구인생은 아들에게로 이어진다. 현재 연변2팀에서 아버지의 등번호인 11번 유니폼을 입고 변선수비수로 활약하는 방규민선수다. 아들이 유치원을 다닐 때부터 축구와 놀게 하고 축구를 즐기게 하였는데 20세인 아들은 현재 팀의 주력으로 활약하고 있단다. 

 

지난 2008년부터 연변체육운동학교에서 청소년축구감독으로 축구사랑을 이어가고 있는 방근섭은 연변팀의 축구팬들에게 “이전부터 연변축구에 많은 응원을 보내주어 대단히 감사하다. 현재 힘든 연변팀이지만 항상 함께 해주는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다. 계속 끓어넘치는 열정으로 연변팀을 사랑해주고 응원해주길 바란다.”고 부탁의 말을 남겼다. 

/길림신문 김룡 김태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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