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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움 못 잊어…하마래마을 촌민들이 보내준 송이버섯

편집/기자: [ 김영화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8-09-27 11:08:45 ] 클릭: [ ]

송이버섯이 값 비싼 줄은 누구나 잘 안다. 그중에서도 값어치를 따질 수 없는 ‘귀’한 송이버섯이 일전 한 애심단체인 패밀리애심협회에 전해졌다는 사연을 애심협회 부회장 요시화씨로부터 전해들었다.

타인에게 힘든 일이 생기면 두말없이 앞장서 사랑의 손길을 뻗쳐주던, 보살핌이 필요한 군체들에게 늘 내여주기만 하던 그들 앞으로 배송된 이‘특별’한 송이버섯은 과연 누가, 왜 보내왔던 것일가?

송이버섯에 대해 묻자 사연을 풀자면 2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면서 요시화씨는 조심스럽게 말문을 뗐다. 때는 2016년 8월말, 룡정시 삼합진에 들이닥친 홍수로 삼합 전 진의 촌민들은 하루 아침에 길거리에 나앉는 신세가 되였다. 그중에서도 지세가 가장 낮은 부유촌 하마래마을이 피해가 가장 심각하다는 소식을 접한 몇몇 애심인사들은 위챗으로 급히 애심그룹을 무어가지고 지원인력을 동원하기로 했다. 그렇게 홍수로 무어진 그룹이 지금의 패밀리애심협회가 되였던 것이라고 소개했다. 송이버섯은 다름 아닌 바로 그 때 도움을 받았던 촌민들이 뜻을 모아 패밀리애심협회에 보내오게 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요시화씨의 상세한 제보 대로 기자는 일전 룡정시 삼합진 부유촌 하마래마을로 찾아가 사랑의 송이버섯 ‘주인’들을 만나보았다.

룡정시 삼합진 부유촌 2조 대장 리명선씨, 당시 피해상황을 들려주고 있다.

2년전 홍수가 쓸고 간 흔적은 온데간데 없었고 아늑하고 깨끗한 마을도로를 따라 가쯘하게 들어선 정겨운 줄집들이 한눈에 안겨왔다. 마을 입구에서 반갑게 맞아주던 부유촌 2조 하마래마을 대장 리명선씨의 안내로 촌부 사무실로 들어가 당시 심각했던 정황과 그들의 마음 아픈 기억들을 자세히 들을 수가 있었다.

“예고 없이 갑자기 들이닥친 홍수로 마을 촌민들이 발만 동동 굴렀습니다. 첫 며칠은 산꼭대기로 올라가 며칠 밤을 묵으면서 지내기도 했습니다. 마을 전체가 물에 잠겼고 집이 둥둥 떠내려가는 것을 눈앞에서 지켜보면서도 저희로서는 속수무책이였지요. 절망에 빠져있을 때 정부를 비롯한 많은 부문들에서 도움을 보내왔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사회에서 모아졌다면서 지원금 1만 5000원을 모아 저희들에게 매집마다 500원씩 나눠주고 저희들에게 제일 필요한 생필품들을 사갖고 온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수재 당시 하마래 마을 피해 상황

그는 당시 ‘백년일우’였던 수재 사진들을 모아두었던 사진첩을 펼쳐보이며 아득하기만 했던 상황을 떠올리며 회억했다.

“지난해에는 송이버섯이 제대로 자라나지 않아 마음 뿐이였지 실행할 수가 없었습니다. 올해는 풍년 든 송이버섯을 보며 저희 마을 리종국 촌서기는 그 때 도움을 주신 애심협회 분들에게 마을 주민들의 마음을 모아 송이버섯을 보내주자고 했습니다. 그의 제안에 마을 전체 촌민들은 흔쾌히 동의하였고 매 집마다 다섯뿌리씩 애심상자에 넣기로 했습니다. 약속이나 한듯이 집집마다 전부 제일 좋은 등급 다섯뿌리씩 골라 한가득 채워졌구요.”

2년이 너머 지났지만 아직도 그 때 받았던 그들의 은혜를 잊을 수가 없다며 촌민들은 너도나도 리종국 서기의 제안을 받들며 ‘답례품’ 모으기에 흔쾌히 나섰다고 했다.

너무 년로한 탓에 송이버섯을 뜯을 수 없어 이웃집 송이버섯을 다섯뿌리 사서 모으기에 동참한 강금복로인은 올해 91세이다. 홍수를 입었을 때 마을을 찾아와 도와줬던 그 젊은이들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며 비록 직접 손으로 뜯지는 못했지만 이렇게나마 보답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며 선뜻이 다섯뿌리를 사다가 내여준 강금복어르신.

가장 구조와 구원이 긴박했던 시각에 백방으로 구조인력을 동원하고 구조물자를 하마래마을에 보내준 패밀리애심협회는 그만큼 마을 촌민들에게 더없이 고마운 사람들이였기 때문에 ‘사랑의 송이버섯 모으기’는 생각처럼 어렵지 않게 진행되였다.

또 다른 마을 촌민 정춘식(71세)로인은 공교롭게로 홍수로 집을 잃은 지 정확히 30년 되는 날 또다시 무정한 홍수에 수십년 지켜오던 보금자리를 무참히 빼앗겼다.

“령감은 홍수방지를 나갔고 나 혼자 이미 짐을 꾸려놓았지만 마구 밀려들어오는 홍수에 아무 것도 못 들고 맨몸으로 집을 나와버렸습니다. 산에 올라가 지내는 동안 평소 심장이 좋지 않은 나에게 마을 사람들은 우리 집이 물에 떠내려갔다는 말을 차마 전해주지 않았지 뭡니까. 며칠 뒤 다시 내려온 마을에서 우리 집이 사라진 걸 보고 하늘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습니다. 숨겨두었던 소중한 반지 하나, 사진 한장 못 건진 건 물론이고 외지로 떠난 아들, 딸의 살림살이들도 다 우리 집에 갖다 놓았는데 그걸 전부 잃었습니다. 홍수에 흔적 없이 쓸려내려간 빈 집터를 바라보며 얼마나 울고 또 울었는지 모릅니다. 근 70년을 이 마을에서 태여나 살아온 우리 두 량주한테는 너무나 가혹하고 참담한 그 때는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떨려옵니다.”

새집 자랑에 나선 전춘식 로인

반세기가 넘도록 이 땅만 지켜온 그들 부부에게 고향마을은 곧 그들의 보금자리였고 전부였다. 그런 그들은 하루 아침에 그들의 전부인 집을 잃게 되였으니 막막했던 그 시간을 다시 떠올리기조차 두렵다고 했다.

얼마 후, 당과 정부에서는 복구사업을 다그쳐 초겨울이 다가오기 전에 집을 잃은 그들에게 따뜻한 보금자리를 다시 지어주었다. 불행하게 두번이나 홍수에 보금자리를 잃었지만 당의 따뜻한 정책으로 지금도 의연히 따뜻한 집에 살게 되여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다며 전춘식로인은 구석구석 ‘새집 자랑’에 나섰다.

현재 정갈한 모습으로 복구된 하마래마을 도로

“어디 그 뿐입니까,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애심인사들이 찾아와 당시 우리 촌민들에게 먹을 것, 입을 것들을 다 챙겨주었고 엉망이 되여버린 집들을 하나하나 함께 치워주었습니다. 이 장판도 바로 그 분들이 사다 준 그 때 장판인데 이런 고마움 어데다 다 말하겠습니까. 그래도 올해 리종국 서기가 송이버섯을 그들에게 보내주자고 나서는 바람에 우리도 보답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여 더없이 기쁩니다.”

그렇게 사랑을 듬뿍 머금은 송이버섯은 한집, 두집, 마을 40호에서 전부 다섯뿌리씩 모아 한박스 가득 채워져 패밀리애심협회에 전달되였던 것이다.

패밀리애심협회 회원들이 수재 당시 복구현장에서 일손을 돕고 있다

“고맙게도 그 때 룡정시민은 물론 주내 다른 현 시 시민들도 적극 참여해줬어요. 미처 피해현장에 와서 일손을 못 돕는다며 외지에 계시는 일부 회원들은 사랑의 성금을 모아 그룹으로 보내주기도 했습니다. 급하게 모인 그룹이였지만 100명 회원들이 지금까지도 정기적 또는 비정기적으로 후원금을 보내오며 사회의 어려운 이웃들에게 전달되고 있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송이버섯을 전달받은 패밀리애심협회는 촌민들이 모아준 사랑에 더없이 감격스러워했다.

“올해 저희들은 세상에서 ‘가장 값진’ 송이버섯을 맛보게 되였습니다. 이 송이버섯은 결코 송이버섯 풍년이여서도, 높은 등급을 보내주셔서도 아닙니다. 바로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고마움을 잊지 않고 은혜를 전하러 온 촌민들의 사랑으로 가득채워진 ‘귀한 선물’이기 때문이지요. 저희들은 그 어떤 대가를 바라고 했던 일은 아니지만, 여직껏 저희들의 도움을 잊지 않고 촌민들이 먼 걸음까지 해서 저희들에게 송이버섯을 전달해주니 너무나 감동스럽고 목이 메일 따름입니다.”

나눔이 있어 행복해하고 서로를 먼저 생각하는 그들의 선행이 더더욱 돋보였다. 올가을 풍년 든 송어버섯처럼 귀하고 향긋한, 모처럼 훈훈함이 감도는 행복한 이 계절이 오래오래 지속되길 기대해본다.

/길림신문 김영화 김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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